고승대덕_서산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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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대덕_서산대사

서산대사서산대사는 호가 청허이며 법명이 휴정이고 속성은 최씨이다.
오랫동안 묘향산에 살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서산대사라고 불렀다.
스님은 안주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는데 고을 군수의 도움으로 한양에 올라와 공부하였다.
15살 때 진사과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 여행길에 올랐는데 지리산에서 숭인장로를 만나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일선화상으로부터 계를 받고 부용 영관에게서 법을 배웠다.

이후 오대산과 금강산 등의 명산을 구름처럼 떠돌다가 33세때에 문정왕후와 보우선사에 의하여 부활되어 승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36세에 판교종사와 판선종사가 되었고 이어서 선교양종판사라는 최고의 승직에까지 올랐으나 곧 이를 버리고 금강산 지리산 두륜산 묘향산 등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1589년(선조22) 정여립 모반사건에 관련되었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으나 결백이 밝혀져 선조의 어명으로 석방되었다. 3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이 패퇴하고 임금마저 의주로 피난하였는데, 73세의 휴정은 선조의 간곡한 부탁으로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국의 모든 승려들이 총궐기하여 싸움에 나설 것을 호소하였다.

이리하여 스님의 문도가 중심이 되어 전국 각지에서 의승군이 일어나니 그 수가 5,000명이나 되었다.
이듬해 의승군은 휴정의 지휘로 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큰 전공을 세웠으며 왕이 환도한 후에는 늙었다는 이유로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총섭의 일을 부탁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선조는 스님에게 '국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 라는 존호를 드렸다.

1604년(선조37)에 세속 나이 85세로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하니 묘향산 보현사안심사 등에 부도를 세웠고, 스님의 유촉에 따라 금란가사와 발우 등은 부도와 함께 대흥사에 봉안되어 오늘에 전한다. 서산대사의 제자는 1,000여 명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유정 언기 태능 일선 네 사람이 유명하여 서산 문하의 4대파라 일컫는다.

서산대사의 저술로는 선가에서 귀감으로 삼아야 할 말씀들을 모아서 간단한 주를 붙인 「선가귀감」과 선과 교를 대비하여 풀이한「선교석」, 선과 교의 차이를 간결하게 해설한 「선교결」, 수도생활에 필요한 주문을 모은 「운수단」, 시문을 모아놓은 「청허당집」이 있다.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유촉으로 그 유품을 보관하면서부터 조선후기 불교계에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특히 서산대사를 모시는 표충사를 세움으로써 절은 대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임진왜란 때 구국의 승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서산대사에 의하여 조선시대의 불교는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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