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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병 항쟁지

 


전남의 해남, 강진, 완도 등지는 1908∼1909년 사이에 의병항쟁의 중심지였다. 처음에는 함평, 나주, 장성, 광주 등 주로 내륙지방에서 전개되던 의병항쟁은 그후 점차 확산되어 1908년 말에서 1909년 초에는 전남의 도서지방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의병 봉기가 도서지방으로 확산된 배경에는 당시 일본의 국권침탈에 대한 전국적인 저항운동과 함께 「완도삼림문제」와 「어업법」시행이라는 지역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이 두 문제는 일본이 이 지역에 대한 경제적 침탈을 강화 한 것으로 삼림과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가던 연안과 도서지방 주민들의 반일 감정 을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으로 유배 온 의병관련자들이 탈출하여 의병활동에 가담함으로써 이 지역 의병 활동은 더욱 활기차게 전개되었다. 특히 심남일 부대의 의병활동은 완도 진도 일대에 정배된 의병관련 유배수들에게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1908∼1909년 당시 전라남도 내륙 지방에서는 심남일, 안규홍, 전해산 등이 주도하는 의병부대가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심남일은 전라남도의 중남부 지역, 안규홍은 중동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전해산은 주로 중서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 가운데 심남일 의병부대는 1908년 후반에 활동 영역을 해남까지 넓혔다. 

이들은 재류일본인(在留日本人)을 축출하는 의병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때 해남에서의 반일 투쟁을 주도한 인물은 이덕삼인 듯하다. 그가 1909년 중반까지 해남·완도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보아 그러하다. 그런데 이덕삼은 심남일의 기군장(起軍將)으로서 출신지역은 영암, 본명은 김덕중으로 알려져 있다. 


1909년 봄 이후 의병부대를 지도한 사람들은 유배수들과 토착주민들이었다. 유배수인 황준성, 추기엽, 강성택, 그리고 해남 출신인 황두일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대다수 일반의병들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다가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참가한 도서 연안 주민들이었다. 결국 해안 및 도서지방에서는 의병출신 유배수들의 지도력과 도서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호응에 힘입어 의병 봉기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자료 : 대둔사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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