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불암은 표충사를 옆으로 계곡을 따라 약 1km 가량 올라가는 두륜산 중턱에 자리잡은 대흥사의 암자이다.
진불암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 백년 된 은행나무가 암자의 역사를 묵묵히 말해 주며 정교하게 쌓아올린 돌탑 하나가 찾는 이의 눈길을 끈다. 진불암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지 못한다.
진불암과 고진불암
「대둔사지」에는 1630년(인조8)에 수월극현(水月克玄)대사와 덕호(德浩)가 함께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보다 훨씬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693년(숙종19)에 이홍록(李弘錄)이 덕탄(德坦)과 함께 중건했고, 1750년(영조26)에는 북미륵암을 중수한 바 있는 온곡대사(溫谷大師)와 함께 우일(宇一)장로가 진불암을 중수했다. 또한 채미대사(採薇 大師)의 글에는 영곡(靈谷) 영파(影波).만화(萬化).운담(雲潭).아암(兒庵) 등의 승려가 이 암자에 거쳐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진불암은 조선중기 이후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현재 진불암은 응진당, 향적당,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응진당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안에는 불상으로 석가 부처님과 28나한상, 문관상이 있다.
그리고 1987년 봉안된 범종과, 1972년의 진불암 중수 불사 당시의 시주자 이름이 적힌 현판도 있다. 불화로는 삼세후불탱화를 비롯해서 칠성탱화.신중탱화.산신탱화가 있다. 이들 탱화는 낭월 고재석스님이 그렸다.
진불암에서 북암으로 넘어가는 삼거리에 토굴이 있는데, 진불암의 옛주인 청화스님의 수도처이다.
진불암은 대흥사의 암자중 신도들이 많은 탓인지, 크고 작은 옹기들이 장독대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한편 「대둔사지」에는 고진불암과 16나한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진불암은 현재의 진불암 근처에 있다. 옛날 기록에 말하기를 강진의 백도방(白道坊)에 서씨라는 어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바다 한 가운데서 고기를 잡다가 서쪽 나라의 배를 만났다고 한다. 배 안에는 16대 아라한상이 실려 있어 '그것을 두륜산방(頭輪山房)에 봉안하고 편액을 진불(眞佛)이라 한다' 했다. 진불은 곧 응진(應眞)으로서 나한을 뜻하는 것이다. 그 후에 정사(精舍)를 산방(山房) 곁에 건립하여 이름을 진불이라 했으며, 또 달리 고진불(古眞佛)이라 했다. 1740년에 위일장로(位 一長老)가 중건했으며, 또 1791년에 정능선로(定能禪老)가 중건했으니 전후 다섯번을 중건했다'.
고진불암은 진불암 바로 위에 있는 암자로, 지붕은 슬레트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 암자는 스님들의 수도처로 사용되고 있다.
[자료 : 대둔사의 역사와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