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 변화하고 주지 스님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같은 변화를 요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사찰이나 스님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고 법문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된다. 부처님이 45년간 설법하셨던 법문에는 화합도 있고 상생도 있고 보시와 자비도 있다. 현대인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개념이다.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가르침을 실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는가다. 실천하지 못한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실천에 옮김으로써 얻는 행복은 무엇인지 그것을 체득할 수 있도록 사찰과 스님들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교구본사 주지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과 책임이 있는가.
“예전에는 ‘사람’이 많았다. 절에서 소임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맡겼다. 주지 스님은 기본적인 관리만 하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주지 스님이 남에게 의지해서 포교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구본사 주지는 ‘1인10역’을 해야 한다. 각기 소임을 두더라도 총지휘자로서 제역할을 성실하게 해내야 한다. 물론 가장 핵심은 자기수행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 자기수행이 형성되지 않으면 원력도 흐려지고, 주변 사람도 흩어진다. 수행이 나를 완성시킨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내가 완성돼야 비로소 이 시대 불교를 웅변해주는 다양한 전통문화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법이다.”
-대흥사에서 오랜 기간 소임을 맡았는데 과거와 현재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큰절에 관광객이 넘쳐나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불공과 제사도 사찰의 주수입원이자, 사찰의 유일한 역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절에 오지 않는다. 해남만 해도 예전엔 갈 곳이 대흥사밖에 없었는데, 요즘엔 공룡공원도 있고 텃밭체험도 있다.(웃음) 절에 오는 불자들 중에도 예전과 달리 자발적으로 불전함에 시주를 하지 않는다. ‘내가 왜?’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사찰은 이제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공감하고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이 될 수 있도록 시현(示現), 즉 보여주고 나타내야 한다.”
-주지 스님의 역할이 너무 커지다보면 외부에 ‘독불장군’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주지가 ‘1인10역’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을 거머쥐고 있겠다는 것이 아니다. 절 살림 전체를 통찰하되, 작은 역할도 맡겨버리고 방치하거나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대흥사와 같은 큰절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람(전문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절이 누구 것인가. 절은 국가의 재산, 국보(國寶)다. 국민 누구나 와서 참배하고 이야기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절의 문턱을 아예 없애야 한다. 나는 대흥사로 템플스테이 오는 사람들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 소임자 스님들과 함께 차 한잔 마시면서 같이 괴로워하고 같이 이야기한다. 요즘 당신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지 묻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는 삶의 가치를 알려주기도 한다. 서로 공감하면서 턱없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공통된 지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절포교 자기수행에 도움이 될 때도 많고, 그런 인연으로 사찰발전에 걸맞는 인재와 만나기도 한다. 사찰은 이제 함께 어우러져 고민하고 힐링문화를 선도하면서 주지 ‘원톱’이 아닌 ‘투톱’ ‘쓰리톱’으로 가야 할 시대가 왔다.(지난해 8월26일 대흥사 주지 취임법회에도 종단 중진 스님들은 물론이고 정파와 계파를 막론한 정치인들과 종교를 초월한 각계각층 지도자 10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영암 도갑사 주지 시절부터 지역민과 남다른 유대관계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혜자스님의 도선사 108순례단 4500명이 대흥사에 온다고 했을 때, 전남도지사 해남군수는 물론이고 지역 공무원 국회의원 기관장들을 대거 초청했다. 그리고 해남땅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방문자 전원에세 선물로 증정하기도 했다. 어제 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의에도 해남군수를 불러 전국 교구장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사찰이 지역과 유대관계를 맺고 다리역할을 잘 해야 지역도 살고 불교도 산다는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위가 높건 낮건 농사를 짓든 공무를 보든 나에겐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다.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겨야 한다.(불교대학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스님은 20대 후반부터 전주 화엄불교대학과 광주불교대학 설립에 주축이 됐다. 18년 전 해남불교대학을 만든 주최도 월우스님이었다. 불교대학을 통해 스님은 지역의 숨은 인재들을 부처님 품으로 이끌었다.)”
-처음 받은 법명이 ‘월오(月悟)’였다가, 좌우를 살피면서 사람들을 도우며 살라는 뜻으로 ‘월우(月佑)’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스님은 특히 다른 스님들보다 유독 편안하고 친근하다.
“남보다 내가 월등하지 못하니까 어리석은 사람이 꾀를 내듯이, 다리를 지날 때도 두드려본다. 어린시절부터 40년 절에서 살며 익혀온 습이다. 무엇보다 이 시대 사찰은 ‘1인 갤러리’가 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문턱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일주문의 빗장을 활짝 열어두어야 한다. 신도를 부처님처럼 모시고, 날마다 나 자신을 바로 보면서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로 가기 위한 대발심과 원력을 다할 것이다.”
초의차·남도사찰음식
땅끝도량 위상 높이다
월우스님은 사찰이 다양한 역할을 하되 뿌리와 전통을 무시하고 새로운 것에만 휘둘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주지 스님이 바뀌면 사찰에서 행했던 많은 포교불사들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현실도 지적했다. 새로운 세대와 계층의 욕구에 부합하면서도 사찰 고유의 전통문화와 역사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템플스테이의 경우 일부 휴식형은 밖에서 저녁 먹고 밤늦게 들어와서 따뜻하게 씻고서 잠만 자고 돌아가는데, 사찰은 여관방이 아니다. 참선도 하고 운력도 해보고 어렵사리 108배 발우공양도 해봐야 평생토록 마음에 남아 약효를 발휘하는 템플스테이가 될 것 아닌가.”
월우스님이 대흥사에서 펼치는 문화포교는 초의스님을 중심으로 한 차문화 계승과 남도음식 특유의 참맛을 알리는 사찰음식축전에 명상과 선체조까지 겸해서 웰빙과 힐링을 주목적으로 한다. 특히 사찰음식은 출가수행자의 뛰어난 정신문화를 일반에 선보인다는 취지로 발우공양도 하는 음식체험장을 개설해서 음식을 배우고 직접 만들어 맛보는 전 과정에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남도문화의 중심에 음식이 있다. 귀한 음식을 나눠먹을 때 행복감이 얼마나 큰가. 사찰음식은 사찰 고유의 풍습과 우리의 옛 전통이 결합된 문화의 결정체나 다름없다.”
차(茶)를 빼고 대흥사를 말하기 어렵다. 스님은 “초의선사의 명맥을 이어나가 밥먹듯 차를 마신다는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처럼 차의 대중화 생활화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외도 대흥사의 현안인 서산대제 국가제향 복원과 호국의승군의 날 지정 등도 지속적으로 추진된다. 서산대사가 ‘만년을 이어갈 종통의 귀의처’라고 하며 의발을 보낸 호국종찰의 대흥사 주지로서, 월우스님은 “대흥사는 미래 천년을 향한 큰 그림을 그리겠다”며 “지역민과 신도들과 대중 스님들과 마음을 모으고 그 소중한 마음으로 뜻을 이루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