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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의 대광명전 상량문

  • 강양원
  • 2009-07-06 오후 3:57:25
  • 1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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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의선사의  대광명전  상량문

                                                                                                                                     常玄居士 姜 良 遠

오늘은 2009년 6월 7일, 음력으로는 기축년 5월 15일 하안거 결재날이다.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 백중날 까지 3개월간인데, 올해는 5월이 윤달이 들어 두 번이므로 오늘 결재에 들어도 백중날 까지는 3개월 해제는 같다.

대흥사에서는 오늘에 맞추어 대광명전 구역 안에 ‘동국선원(東國禪院)’을 신축하고 현판식을 거행하였는데 여기에 참여하여 기념촬영까지 하였으니 생애에 더없이 영광된 날을 맞이하였다. 대흥사는 조선 후기에 13대 종사와 강사를 배출하여 쇠퇴한 불교를 세워나간 도량이었음에도 지금까지 선방하나 변변치 못하다가 이제 제대로 된 선방을 갖추게 되었으니 대강백의 기운이 피어나리라. 광명전 구역은 평소에도 입구에는 언제나 ‘일반인 출입금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구역이다.  대광명전의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조촐한 건물이다. 초의 스님께서 64세 때 직접 주도하여 지으시어 상량문을 쓰셨고 단청도 하였기에 지금까지 단청하나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다고 한다.

오늘은 현판식 참석을 기회로 설래는 마음을 가누며 광명전 전각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삼배를 올리고 조용히 입정하니 500여 년의 시공이 하나 되어 초의 스님의 낭낭한 상량문 법음이 전각 안에 은은히 울리는 듯하다.

 

   대광명전 상량문

「참다운 근원은 혼돈하였을 때, 천문(天門)안에 한 기운으로 갇혀있고, 밖으로 나타난 모양은 동몽(潼濛)해서 삼영(三靈)을 지호(地戶)에 감추었도다. 옥룡자의 높은 식견으로 그 참모습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며, 금벽현문(金壁玄文)으로도 그 오묘함을 캐내지 못하리로다. 여기 두륜(頭崙)이 있는데, 넓은 바다를 끼고 산세가 비할 때 없이 기이하여 큰 신령이 숨어 그 신광(神光)이 청숙(淸淑)한 기운을 심었으며, 지신(地神)의 수호로써 상서로운 것들을 정영지화(精英之華)로 쌓았도다. 지운(地運)이 살며시 돌아와서 비로(毘盧)의 보전(寶殿)을 세우게 되었나니, 하늘의 아름다움이 불어나서 사나(舍那)의 모습을 나타내었느니라.  표충사의 동쪽에 자리 잡고 정로예근(靜老禮覲)의 북쪽에 있도다. 색상(色相) 빈곳에 색상이 있게 되어 보탑이 빛나고, 비장엄(非莊嚴)한 곳에 시장엄(是莊嚴)이 되었나니, 어찌 은감(銀鑑)이 빛나지 않으리... (중략.....)  나 초의는 불가(佛家)의 거품이요, 절간의 미출 인데, 일찍이 출가하여 속된 생각을 없앤 줄로 여겼고, 문우들과 사귀면서 연정을 이룬 것으로 알았으며, 피안(彼岸)에 갈 것으로만 짐작하여 고승들과 즐거움을 함께하였도다. 아! 아니로다. 아니로다. 피안은 아득히 멀었도다. 멀었도다. 이제 많은 사람의 시주로 절간을 짓나니, 일승(一乘)의 감주(甘注)를 불리어 삼도(三途)를 빛내기를 맹세하고 좋은 때 만나 가르침대로 행하리니, 삐기 피고 시냇가 푸르고 꾀꼬리와 나비는 제 모습을 자랑하며 제비와 비둘기는 훈풍 받아 즐겁도다.

이 경치 속에서 이 상량문을 올리나니,

 

아랑위(兒郞偉) 포량동(抛樑東)--구름 뚫은 아침 해가 낙산에 붉게 물들었고 그 낙산에서 흐르는 물은 구슬처럼 맑아                                           흘러 흘러 명당으로 들어오니 상서로운 얼굴 비치리라.

 

아랑위 포량서(抛樑西)--바닷가 산들은 푸르러 석양에 낮고 연화계(蓮花界)는 석양밖에 있으니 거기 가려면 우선 보제                                     (寶梯)를 만들어야지.

 

아량위 포량남 (抛樑南)--안개 걷혀 보타(寶陀)의 바위가 푸르고,  자비스런 얼굴이 툭 트인 경지에 있어서 모든 것이                                                 한자리에 모였도다.

 

아량위 포량북 (抛樑北)-- 조각달은 활을 잰 것 같고,  넘치는 정을 안고 문전에 이르니,  때때로 지성을 바쳐 왕성하리                                      로다.

 

아량위 포량상 (抛樑上)--향기 자욱한 국토에 막힌 것이 없나니, 바라건대 향내 나는 재(齋)지낸 밥을 중생에게 나누어                                  주어 굶주림과 병에서 구제하소서.

 

아량위 포량하. (抛樑下)--많은 신도가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이들은 모두 한 뜻을 지녀 당대에 이 절간을 지었도다.

 

엎드려 비나니 상량이 끝난 후 도력이 오래 오래 굳어지고, 종풍(宗風)을 크게 떨쳐 이 모임을 팽택(彭澤)의 높은 정과 같이하고, 깨닫기를 염계(廉溪)의 그것과 같이 깊게 하여 허명(虛明)을 바로 뚫어 백세의 사표가 되게 하고, 평안한 태일(泰逸)의 본을 지켜서 천문의 덕을 함께 하소서! 삼광(三光) 오명(五明)의 아름다운 보살핌으로 백만 창생의 큰 복이 모여들게 하소서!」

 

존칭 보리봉호(김봉호) 선생님의 책에 쓰여 있는 글이다. 합장하며 조용히 내부를 관람하니 할아버지의 대청마냥 초의 스님의 투박한 채취가 그대로 스며있다. 네 귀퉁이의 기둥은 그런대로 반듯 한대, 측면 가운데 두 개의 기둥은 방금 산에서 베어온양 굽은 나무를 그대로 세워서 더욱 정겹다. 천장은 단청은 하였으나 어느 전각마냥 조각 장식도 없이 민천장에 단청되어 가난했던 당시가 그대로 베여있는 듯하다. 정말 이대로 손대지 말고 보존하여야 할 일이다.

이 건물 옆에 예부터 ‘보연각(寶蓮閣)’이 있어 초의 선사께서 학승을 가르쳤던 곳으로 서산스님과 그의 제자 분들의 영정을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며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 보연각을 서산스님이 계시는 표충사 경내로 옮기고 이곳에 동국선원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동국선원과 동다송(東茶頌)의 동(東)은 중국의 동쪽나라라는 뜻으로 곧 조선을 뜻하는 말인데, 동다송의 터에 동국선원이 들어섬은 더욱 뜻 깊은 일이라 하겠다.

주지스님의 안내로 보연각을 참배하고 설명을 들었다. 중앙에 서산스님을 중심으로 좌우로 여러 제자들의 초상화와 명호가 쓰여 있어 위패의 기능과 서산대사 예하 문도들의 가승(家乘)으로 어느 절에도 없는 유물이란다.

입구 좌측 첫머리에는 근대 초상화가 액자에 걸려 있는데 양청우 큰 스님으로, 대흥사의 대처승 박영희 스님들을 내보내시고 비구승단으로 정화하셨다고 하니 다시 한 번 새겨 보아야 할 분이다.

초의 스님의 속성은 장의순(張意恂1786-1866), 법호는 초의(草衣), 정조 10년 4월 5일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출가하여 19세 때 영암 월출산에 올랐다가 보름달이 바다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고 개오하였다. 그 후 대흥사에서 완호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법맥을 이었으며, 초의라는 법호를 받았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와 있을 때, 백련사에서  찾아뵙고 학문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다산의 아들 정학연을 만나고 그의 소개로 한양의 추사 김정희를 알게되어 이후 동갑의 친구로 깊은 우정과 학문을 나누면서, 추사가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는 제주의 적거지까지 직접 찾아가 위문하기도 하였다.  또한 스님은 시. 서. 화. 다.의 4절로 명성이 높아, 진도의 소치 허유가 찾아와 제자로 가르쳐서  한양의 추사에게 유학보냄으로서 소치를 화가로 크게 키워서 추사(유). 초의(불). 소치(화)의 3인 1가를 이루었다.  38세에 대둔사지를 편찬하였고, 43세 때 지리산 칠불암에서 청나라 모문환이 엮은 ‘만보전서’ 중의 <다경요체>에서 찻잎의 채취, 차 만드는 법, 품질 식별, 찻물의 선택에서 차 마시는 법 등 다구와 행주 헝겊과 위생관리 까지 총22개의 절목으로 초록(抄錄)하였다가, 45세 때 대둔사 에서 이를 정서 하여 다신전(茶神傳)을 편찬하여 조선 다도(茶道)의 이론과 실제를 정립하고, 우리나라의 전통 차 문화를 확립시킴으로써 차의 중흥조가 되었다.

52세 때에는 해거도인 정조의 부마인 홍현주의 부탁을 받고, 불후의 고전인 ‘동다송(東茶頌)’ 을 지어 차의 덕을 칭송하고 우리 차의 우수성을 기리었는데, 7언 4구를 1송으로 총 17송이며, 그 제1송(第一頌)은 이러하다.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귤의 덕과 짝 지으시니                       后皇嘉樹  配橘德  (후황가수 배귤덕)

받은 탯 자리 옮기지 않아 남녘땅에 자란다네.                         受命不遷  生南國  (수명불천 생남국)

촘촘한 잎은 눈 속에서도 겨우내 푸루르고.                              密葉鬪霰  貫冬靑  (밀엽투산 관동청)

하얀 꽃은 서리 맞아 가을에 피우네.                                        素花濯霜  發秋榮  (소화탁상 발추영)

 

※. 后皇 : 황천후토(皇天后土)의 준말. 우주만유의 조물옹(兆物翁)

     受命不遷 : 명을 받은 자리를 옮기지 않음. 씨가 태어난 곳에서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함

 

                                                                                                                   己丑年 夏安居 結齋日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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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중공자 2009-07-28 오후 8:21:24 덧글삭제
    말로만 듣던 초의 스님의 글을 대하고 보니 경의롭습니다. 역시 큰스님 이십니다.존경스럽습니다.소개해 주신 강양원 선생님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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