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 게시판

유네스코로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천년고찰
두륜산
묻고답하기
종무행정
불교대학
템플스테이
三災不入之處 萬年不毁之地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
HOME > 불교만남의 장 > 도반 게시판

도반 게시판

중국 성지 순례 여행기

  • 강양원
  • 2010-11-26 오후 2:34:33
  • 11,805
  • 메일

                                  중국, 무석 그리고 장가계 여행

 

 

□. 2010. 10. 23.

 

 

1. 무석(無錫)--중국의 국가적 불사의 현장

 

 

2010년 10월 23일부터 10월 27일 까지 4박 5일간으로 대흥사 주지스님을 모시고 성지순례의 여행으로 31명이 중국의 무석과 장가계와 원가계, 그리고 천문산을 다녀왔다.

부산 김해 공항을 10월 23일 12시 35분 이륙하여, 14시경 상해 공항에 도착 하였다.

현지 시각은 13시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13시 30분 버스에 올라 무석으로 향하였다.

무석(無錫)은 상해에서도 남서쪽으로 200여㎞ 어진 강서성 무석시로, 3시간을 가야한단다. 강서성의 성도인 남경은 쪽으로 183㎞의 거리에 있다. 언제나 흐릿한 가랑비 방울이 함께하는 국 남방의 날씨 속에 가도 가도 산봉우리 하나 보이지 않는 평원을 달리니 가이드가 무료를 달래주려고 안내 멘트를 한다.

 

흐릿한 날씨를 대변 하느라 먼저 왜 중국에는 비단이 발달하였는지를 명한다.

바로 이렇게 다습한 날씨의 탓이란다. 무명 솜은 습기를 빨아들여 축축해져 말려 입을 수가 없지만, 비단은 습기를 타지 않아 이러한 기후에서는 가장 알맞기 때문이란다. 그랬었구나! 비단장사 왕서방에 대해 이해가 되는 이야기이다. 무석은 옛날 주석(朱錫)이 생산되어 중국 청동기 문화의 근원을 이루어 유석(有錫)이라 불렸는데, 광물이 모두 채굴되고 없어진 로는 무석(無錫)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시간 여를 달리니, 무석시 마산(馬山)이라는 곳이다. 프라자 호텔에 숙박을 들었다.

 

 

□. 2010. 10. 24.

 

 

마산의 끝자락에 우리나라의 산과 같이 이, 삼백 미터의 눈에 익은 산봉우리가 나타난다.

우리의 목적지까지 다 온 것이다. 당나라의 삼장법사 현장(玄藏.602-664)이 천축을 다녀오는 길에 이곳을 지나갈 때, 상서로운 산세를 보고 후에 자기의 제자를 시켜 이곳에 사찰을 건립토록 하여 최초에 사찰이 생겼다는 것이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다시 경내 전동차를 타고 이동하니 희미한 안개비 속에 멀리 웅대한 입상의 영산대불(靈山大佛)이 구름 속에 우리를 맞아준다. 2단으로 조성된 108계단을 올라가 발밑에 이를 수 있으나 일정상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아래에서 합장으로 참배를 하였다. 대불의 높이는 88이고, 좌대까지 포함하면 108가 된다고 한다. 역시 대륙적 기질의 발로이다.

광장 아래쪽에 장구한 세월이 검게 각인된 수피(樹皮)를 둘러쓰고 수세(樹勢)는 쇠약하여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은행나무가 가지에 받침목을 의지하여 서있는데, 삼장법사의 역사의 흔적은 이 은행나무 뿐 이라고 한다. 그 아래에 사찰이 있는데 들려볼 여유가 없이, 곧 바로 가이드의 독촉에 쫓겨서 전동차를 타고 궁전 불당으로 향하였다.

웅대한 대리석 현대 건물이 나타나고 광활한 돌계단을 오르는 나는 한 마리의 개미 마냥 하였다. 번질한 대리석 현관을 지나 들어선 중앙 홀은 누가 설명을 부연하지 않아도 한눈에 그림에서 보아온 바티칸 성당 내부의 모습과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사방 벽면에는 부처님의 영산회상이 펼쳐져있고, 저 높은 천정의 중앙에는 둥그런 원형 안에 파란 우주가 펼쳐지고 그 안에 하얀 별자리가 깜박깜박 점멸하며 불국토를 보여주는 듯하다.

정면의 20여 척 벽면에는 관세음보살의 입상을 순금으로 조성하고 화관은 온갖 보석으로 장엄되었으니, 그 호화스러움에 넋을 잃을 정도이다. 흑자단 원목으로 재단된 10여 척 문짝 하나는 1억여 원에 상당한다니 할 말을 잃고 부지런히 가이드를 따라 길을 잃지 않도록 매끄러운 대리석 통로를 따라다녀야만 하였다. 종단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없는 시설일지니 정부적 차원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 일 것이다. 깨달음의 시설인지, 상품화의 시설인지 먹먹한 기분이다.

 

밖으로 나와 가이드를 따라가니 대리석이 깔린 드넓은 광장 중앙에 있는 5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석탑 위에는 연꽃 속에 ‘천상천하 유아독존’ 을 선언하시는 부처님이 서 계신다. 밑에서 간격을 두고 분수가 뿜어져 씻기면서 불상이 회전하는데, 사월 초파일날 아기부처님께 관욕하는 모습과 같다.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온통 까마귀 떼가 운집하였다 흩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불상 앞에서 오전과 오후에 한 차례씩 공연이 있다는데 우리는 오전 공연에 한 발 늦었고 이제 막 공연이 끝난 뒤이다. 그리고 서서히 연꽃잎이 오므라들어 부처님을 덮으면서 분수가 그치고 회전도 멎었다. 광장 밖으로 나와 정면 쪽에서 바라보니 연꽃 탑 뒤로 멀리 사찰이 있고 그 뒷동산에 아까 보았던 영산대불이 일직 선상을 이루고 있다.

아! 그런데 산세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니 눈이 번쩍 뜨인다. 그야말로 길지임이 직감된다.

참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 두 날개를 쫙 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양쪽 두 날개는 좌청룡, 우백호요. 정수리 이마는 바로 명당이 된다. 그곳에 영산대불이 서 있다. 삼장법사도 이렇게 산세를 보셨을까? 아무튼 한국의 절터도 모두 다 이렇게 길지들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다시 상해로 나오는데 시야에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남해바다와 이어지는 것인가? 가이드가 설명한다.

“아닙니다. 바다가 아니고 태호(太湖)라는 호수입니다. 중국 땅은 바다가 융기되어 이루어진 대륙으로 이 호수는 그때 바닷물이 갇힌 저지대로 지금은 담수호가 된 것입니다.”

호수의 넓이는 24,000㎢(1㎢=100㏊)가 된다 하니, 12,200㎢의 전라남도 두 배가되는 면적이다. 이 호수 안에는 48개의 섬이 있는데, 우리가 있는 마산도 바로 이 호수 속 섬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영 실감이 안 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호수의 평균 수심은 2m이고, 특산물로 은어, 백어, 흰 새우를 태호 삼백(三白)이라 부른단다.

호수가로 삼국지 촬영 세트장을 구경 갔다. 무석은 삼국지 시대의 손권의 오(吳)나라 땅이다.

선착장에는 위. 촉. 오나라의 깃발이 펄럭이고 당시의 전투함을 건조해 놓았다. 엔진 음을 내뿜는 목선전투함을 타고서 멀리 평선을 바라보며 제갈량의 계략으로 손권과 주유가 30,000의 군사로 조조를 무찌르는 적벽대전을 연상 하면서 동남풍이 불기를 기원하니 내가 마침 제갈량이라도 되는 듯 가슴이 우쭐하다. 산중턱에는 요새를 재현해 놓았는데 일회용 세트가 아니라 실질 건축물로 지어놓았다. 상해로 돌아와 시간의 여유가 있어 발마사지로 피로를 풀었다.

상해에서 19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장가계로 가는데 2시간이 걸린다. 김해에서 상해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밤늦게 장가계시에 있는 만태국제 호텔에 투숙하였다.

 

 

□. 2010. 10. 25.

 

 

2. 원가게 .그리고 천자산.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려고 밖에 나오니 벽면에 부조되어 있는 민속화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모습이 있다. 수건을 머리에 동여맨 농부가 한 발을 들어 올리며 양손에 북채를 잡고 흥겹게 북을 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 모습은 바로 진도군(珍島郡)의 양손 북 놀이가 아닌가? 이웃인 우리 해남에서도 그러하지 않는데, 전라도에서 유일하게도 진도군에서는 북 놀이를 할 때 양손에 북채를 잡고 친다.

몽골 인이 세운 후금의 청나라가 병자호란(1,636)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니 인조임금이 삼전도에서 항복할 때, 배중손 일당이 진도로 내려와 항 몽하므로 몽골군이 진도까지 쳐들어왔었는데 그때 청나라의 양손 북이 진도에 전래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장가계(張家界)구역의 보봉호와 원가계(袁家界) 구역을 구경하게 되었다. 이곳은 호남성의 제일 남쪽 끝으로 무릉원구(武陵源)와 용정구, 그리고 2개현으로 구성되었으나 1980년도에 시로 승격되면서 장가계란 지명이 워낙 유명해져 시 이름도 장가계시로 되었단다.

천문산을 깃 점으로 하는 장가계 산림공원과 천자산을 깃 점으로 하는 무릉의 자연풍경구, 천자산 풍경구, 원가계 풍경구 등을 합쳐 1,992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장가계 구역은「V」자형 장곡(嶂谷)으로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 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의 날씨로 보아 아침나절에는 원가계 구역에는 안개가 짙을 염려가 있으니 보봉 호수를 먼저 가자고 한다.

이 구역 내의 주민들은 옛적 토적들이다 시피 한 토비족으로 장씨(張氏)사람들이 사는 산중 구역을 장가계, 원씨(袁氏) 사람들이 사는 구역을 원가계라 부르는데, 모두다 ‘토비족’ 이라는 양아치란 이름 이란다. 관광지로 개발하여 한국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여 한국인이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산골짝은 깊어지고 촛대마냥 뾰죽한 봉우리들이 위태로이 솟아있음이 신비롭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려 입장표를 사고, 20여분 계단으로 산등성이를 넘어가니 깊은 계곡의 청량한 호수에 유람선이 오가고 있다. 비좁은 선착장에 인파가 만원인데, 거의가 한국 관광객들이고 유난히 경상도 말씨가 또렷이 들려온다. 호숫가 표석에 ‘인간원지 보봉호(人間瑗池 寶峰湖)’ 라 새겨져 있다. ‘원(瑗)’ 자가 패옥이란 뜻이니 ‘인간이 만든 패옥 연못, 보배 봉우리 호수’ 라는 뜻인가 싶다. 이 호수는 반(半)자연 반 인공 호수로 원래는 양어장으로 축조되었으나, 주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대만 실업가가 240억을 투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데, 어딘가 물을 막은 제방은 보이지 않고 입구 쪽에 12m 정도의 막음시설이 보일 뿐이다.

 

이 호수에는 밤에 아기울음처럼 우는 ‘아기고기’ 라는 민물고기가 서식하여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평균 수심은 72m이고 깊은 곳은 108m에 이른다고 하며, 길이는 2,5㎞가 되는 그리 큰 편이 아니다. 칠, 팔 척의 유람선이 운행하는데 올라가고 돌아오는 호숫가에서 현지인의 복장을 한 예쁜 처녀와 총각이 멋들어지게 노래하여 관광객을 즐겁게 한다.

청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짙푸른 호수 물은 병풍처럼 둘려진 호변의 절경을 껴안고 있는데, 아름다운 절경이 물아래 잠겨가는 것이 아쉬워 고개를 돌려보며 어떻게 표현해야 할 글귀를 찾다가 말을 잊는다. 공작새 바위를 바라보며 반환점에 다다르니 정면에 두꺼비가 서서 입을 벌리고 있는 습의 봉우리가 서 있는데 보봉(寶峰)이란다. 년 중 5월 보름 경에 잎을 벌린 저 사이로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환상을 보기 위하여 미리 와서 숙박을 하는데, 그날 밤은 호수에 사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내려 나오는 길을 아래쪽에 따로 내었는데, 제주도의 천지연 폭포와 같은 협곡의 90도 암벽에 철제로 낸 계단은 타고 내려온다. 처음에는 아마 이 곳으로 호수의 물이 떨어졌을 것 같다. 계곡의 기념품상점에 다다르니 연못에 ‘아기고기’가 한 마리 있다. 회백색으로 길이가 1미터에 이르는데 큰 메기를 닮았다. 협곡을 나오니 산중턱에서 인공폭포가 쏟아진다.

보봉호의 물을 끌어서 흘려보낸단다. 좋은 아이디어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원가계 풍경구로 향하였다. 무릉산맥의 끝자락인 풍경구 입구에는 무릉원(武陵源)의 현판이 걸린 9층 누각이 있고 이곳에서 관광버스에서 내리고 무릉원 내에서만 따로 운행되는 셔틀 버스에 갈아타야한다. 종점에서 내리니 산봉우리들이 유난히 아름답다. 모노레일을 타고 십리 화랑(十里畵廊)이라 불리는 계곡을 관상하며 올라간다. 바위 표석에는 십리미경(十里美境)이란 글씨도 보인다. 3억만년 전 바다가 융기되어 이루어진 산맥이 부드러운 뻘 흙은 씻겨지고 허물어지며 사암(砂巖)의 뼈대만이 남아서 돌기둥을 형성하여 갖가지 형상을 이루며 사암봉림(砂巖峰林)을 이루고 있는데, 마치 선인들이 모여서 회합을 하고 있는 듯하다.

봉림의 바위틈에 자라는 소나무는 분재를 가꿔 놓은 듯 수형도 아름다워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절로 내게 한다. 가이드는 열심히 어필봉(御筆峰)이니, 검지바위니, 약초 캐는 할아버지이니, 선녀산화(仙女散花)니, 세 자매 바위니 열변하다가 제풀에 꺾여, 가이드의 설명은 30퍼센트만 듣고 눈으로 70퍼센트를 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 야 말로 서불진언(書不盡言)이요, 언불진의(言不盡意)라.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각자 보고 느끼며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뇌리에는 몽유도원도가 떠오른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운무 속에 솟아있는 바로 이 봉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이상향에서 살아가는 무릉(武陵)사람의 이야기이고,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는 도연명의 도화원의 꿈이었으며, 원가계의 이곳을 무릉원(武陵源)이라 하였으니, 모두다 이곳 사암봉림(砂巖峰林)의 이야기가 아닐까?

모노레일일의 종점에서 내려 모두들 신선의 봉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에 분주하다.

친구 조영일이와 김종휘, 나와 셋이서 세 자매바위를 배경으로 현지인들에게서 한 장에 3,000원씩 주고 즉석 사진을 찍었다. 흐린 날씨에도 사진이 잘 나왔으니 좋은 기념사진이 되겠다. 가이드는 바가지 쓴다고 말리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좋은 사진기로 찍은 가치가 보인다.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와 천자산 색도(索道) 승강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으나 쌀쌀한 날씨에 풍광은 안개에 묻히고 천지구별이 렵다. 천자산은 해발 1,260m이고, 케이불카의 길이는 2,084m이며 고도차는 692m란다. 산정에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이 하룡 공원이다. 안개 낀 날씨는 쌀쌀하고 이따금 빗방울까지 흩뿌려 모두다 비닐우의를 뒤집어쓰고 한기를 막는데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오석에 세련된 행서로 ‘하룡공원(賀龍公園)’이라는 강택민 주석이 쓴 표지석이 누워있다.

하룡장군은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중국의 10대 원수(대장)로, 이 지역이 그의 고향이어서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고 커다란 그의 동상을 세웠는데, 중국인들은 그를 존경하여 단체관광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안개 속에 그의 동상이 보이는데 추위에 아무도 가보려고 하지 않는다. 탐방로를 따라 산정을 한 바퀴를 돌면서 가끔씩 벗겨지는 안개 틈으로 천길 신선봉을 눈요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를 지나니 보라고 하는데, 안개 속에 무엇을 말하는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조금 아래로 내려와서 보니 절경의 협곡에 커다란 동굴이 관통되어있고 그 위에 연결된 부분을 다리라 한 것이다.

 

장가계시로 돌아와 계획에 없는 가무극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가이드의 체면을 보아주는 것 같다. 버스 안에서 50,000원씩을 별도 각출하고 저녁식사 후 밤 8시가 돼서야 피곤한 몸으로 공연장에 들어갔는데, 이게 또 노천극장이다. 한기를 막으라고 군인 방한복 같은 파카로 두 사람이 무릎을 덮도록 하였는데,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극의 내용은 대충 사냥꾼에 쫒기는 여우를 나무꾼이 구해주었는데, 이여우가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행복한 생활을 하나 결국 인간과 여우는 함께 살 수없는 몸, 여우는 여우로 돌아가서 달 속에 비친다는 선녀와 나무꾼 같은 이야기이다. 실경처럼 보이는 뒤 배경 산은 디지털 기법으로 천문산을 직접 투영하여 배경에 나투게 하고 그 앞에서 연출을 하니, 처음에는 진짜산인 줄 알았다. 아름다운 소녀들을 대거 출연시켜 노래와 군무를 연출시키는 대형 가무극으로 그 화려함과 웅장함은 알아줘야겠다.

공연 내내 추위에 움츠리다가 어젯밤 묵었던 호텔에서 숙박 들었다.

 

 

□. 2010. 10. 26.

 

 

3. 장가계, 귀곡잔도. 천문산사. 천문동굴.

 

 

아침에 호텔을 나와 천문산으로 가기 위하여 버스로 케이불카 승강장에 내렸다.

승강장은 장가계시 용정구 기차역사(驛舍) 앞 도로 건너편 시내에 있었다. 8명이 하나의 바구니 안에 대롱대롱 민가의 지붕과 기차 역사 철길위로 넘어간다. 한국 같으면 환경보호니 사생활 침해로 어림없는 공사겠다. 구릉을 넘으니 넓은 분지에 토지가 있는데, 이곳에 승강장을 설치했다면 구역도 넓고 정상까지의 길이도 짧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설명을 들으니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불의 명성을 얻기 위해 일부러 시내에 설치하였다니 자본주의 경제적 상식으로는 실소를 금할 수밖에 없다. 천문산은 해발 1,518m이며 케이불카의 표고 차는 1,300여 미터에 이르며, 케이불의 길이는 세계에서 가장 긴 7,455m로 40분이 걸리고, 프랑스 회사의 제품으로 98개가 매달려 운행 되고 있다고 한다. 눈 아래 아슬한 협곡을 올라서는데 촛대 같은 돌산위에 콘크리트 기단을 설치하고 철근 지주를 세워 케이불을 설치하였다.

어떻게 이러한 곳에 공사를 실시하였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답은 간단하였다. ‘공산당에서 하면은 못하는 일이 없다’ 는 것이다. 그렇겠다. 중국 인들은 사람만 만들지 못하고 다 만든다고 하는 우수개 말이 있지 않는가. 북쪽으로 멀리 천문 동굴이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는 도로가 마치 산꼭대기로 뱀이 구불구불 기어 올라가는 듯하다. 오를수록 산세는 험악해지고 천 길 낭떠러지 봉우리를 넘어가는데 오금이 저림을 애써 감추고 숨을 죽이면서 이렇게 까지 시설을 하여야 하는지 되려 짜증스럽다.

 

케이불카 종점에서 내려 도보로 천문산사까지 가도록 되어있다. 입구에는 자연석 비석에 붉은 글씨로 ‘귀곡잔도(鬼谷棧道)’라 새겨있어, 귀신 골짜기에 설치된 길이라니 어쩐지 으스한 느낌마저 든다. 나뭇가지에는 글이 새겨진 붉은 리본들이 온통 매달려 있는데, 액운을 막아준다며 소원을 써서 달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계곡은 점점 더 웅혼하고 깊어지는데, 솟아오른 산봉우리의 천 길 낭떠러지 바위 절벽 면에 1.5m폭의 콘크리트 판석으로 붙여 길을 만들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떨리는 다리를 가능한 절벽 면 쪽으로 붙이고 손을 뻗어 난간을 꽉 잡고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직하삼천척(絶壁直下三千尺)이다. 주변의 산세는 하늘을 막아놓은 제방인 듯 급경사의 석회암 사면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여 더욱 위태로운데, 남으로 터진 광활한 계곡에는 수목이 없어서 더욱 아득하고 아스름 함이 천상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눈앞이 빙글빙글하여 얼른 시선을 뒤쪽으로 돌리고 물러서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귀곡을 이렇게 직접 보도록 잔도를 설치하였겠지만 위쪽 산위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귀곡을 관망함이 더욱 그윽하지 않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러한 공사는 하였으며, 또한 공사 중 얼마나 많은 인부들이 희생되었을까? 공산당의 제도 하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귀곡잔도가 끝나고 15분 쯤 오솔길을 걸으니 천문산사가 나온다. 천문산의 기온이 매우 차갑다. 한국에서도 이날 영도의 기온으로 급강하하였다고 하였다. 당나라 때에 이곳에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고, 청나라 때에는 남방지역의 대표적 불교본거지로 번성하였다고 하는데, 길 아래쪽에 묵혀진 농토의 흔적이 잡초 속에 묻혀있다. 그런데 산짐승도 오르기 어려운 이 높은 산중에 사찰이 번창하였다함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옛적에는 과연 어떻게 이곳에 까지 올라왔으며, 지금에는 과연 불자들이 얼마나 찾아올 수 있을까?

 

부지만도 1만㎡에 새롭게 지어진 천문산사는 1,500여 미터의 고산에 있어 지피식물만이 암반을 덮고 있을 뿐, 수목이 자라지 못할 여건이다. 산사는 산정아래 암반을 다듬어서 웅장하게 지어졌으며, 콘크리트 건물은 단청도 요란하여 무슨 궁궐인 듯 느껴지고, 한국산사의 고고함은 느껴볼 수 없다. 대리석이 깔린 앞마당에서 높다란 돌계단을 오르면 행랑처럼 긴 성문 같은 건물에는 ‘천문산사(天門山寺)’ 라는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고, 천왕문(天王門)에 이어서 대웅보전(大雄寶殿)에는 ‘선산불연(仙山佛緣)’ 이라는 현판이 불연 따라 찾아온 나를 맞아주는 것 같다.

그 뒤쪽에는 조선 사대부들의 뾰족뾰족한 돌기가 솟아난 탕건 같은 모습이드는 3층 형태의 관음각(觀音閣)이 있다. 1층 누각에는 ‘승경연지(勝景蓮池)’ 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2층에는 ‘보도중생(普渡衆生)’ 3층 높은 곳에는 ‘관음각(觀音閣)’이 걸려 있다. 이곳이 선산성경(仙山聖境)이요 천계불국(天界佛國)이라고 하였으니, 나는 천상의 불국토에 왔음을 애써 자긍하며 금반 성지순례의 가치를 생각해 보았다. 전각들을 돌아 내려와 다시 한 번 드높은 천문산정과 우람한 천문산사를 올려다보니, 불현듯 최치원의 ‘바위 봉우리’ 란 시가 떠오른다.

 

 

저 높은 바위 꼭대기 하늘에 닿을 듯

형세 가팔라 뭇 나무 범접을 못하고

격조 높아 오직 구름과 안개만 벗 삼네.

달밤이면 여러 신선 모여 놀리라.

 

 

내려오는 길은 귀곡잔도를 이용하지 않고 산사 앞에서 리프트카에 두 사람씩 타는데, 주지스님과 같이 탔다. 바람막이 덮개도 없이 달랑 맨몸으로 노출되어 허공을 가르며 내려오는데 차가운 공기가 뼛속을 스민다. 산림관광시설이라지만 운무는 멀리 산을 가리고 추위 속에 그저 빨리 종점에 닿기만을 바랄 뿐이다. 1,200m의 거리를 타고 내려오니 컴퓨터 앞에서 사진을 찾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기에 무슨 사진인가 보았더니, 리프트 카를 타고 공중에 매달려 있는 나와 스님이 찍혀 있어서 한 장에 2,000원씩을 주고 찾았다. 올라왔던 케이불카 종점 역으로 걸어서 내려오면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아찔한 귀곡잔도는 없어도 이 길로 천문산사까지 다닐 수 있는데, 그 위험한 잔도는 관광용으로 억지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인 것 같다.

케이불카의 중간 역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단다. 또 무슨 산중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말인가? 아무튼 안내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수직절벽을 타고 직하 하는데 눈앞으로는 무릉의 봉우리가 영상처럼 날아오른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밖으로 나오니 협곡은 선경처럼 아름답다. 역사건물에는 ‘백룡엘리베이터’ 라 써있다. 고개 돌려 내려온 하늘을 쳐다보니 엘리베이터의 구조물이 수직절벽에 붙어있는데, 노출된 부분의 높이가 170m에 이르고, 산속으로 뚫린 길이가 165m에 이르러 총 335m에 달한다고 한다. 멋있는 발상일까? 희한한 작품일까?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셔틀버스에 갈아탔다. 이제 보니 케이불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았던 천문동굴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름 하여 ‘통천대도(通天大道)’ 이다. 차창에서 올려다보니 산의 경사가 70도에 이를 것 같은데 20여 굽이를 거의 180도로 돌아 오르는 운전사가 대단하게만 생각된다. 한국에서라면 이러한 행위는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환경파괴요, 산림훼손 행위이다. 꼭 올라야 한다면 케이불카를 이쪽으로 연결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면 궂이 이러한 길을 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이 생각 된다. 험준한 산세는 분명 욕계의 속인들의 접근을 금하고 있었으나, 결국 인간의 돈벌이 욕망이 산복(山腹)을 구불구불 갈라서 길을 만든 것이다. 그 꼭대기에는 맑은 거울이 천상에 걸려있는 듯 천문동글이 있다.

 

해발 1,300m의 승강장에서 차를 내렸다. 천문동굴(天門洞窟)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회암 동굴통문으로 삼국시대 오나라 때에 바위산의 절벽이 무너지면서 형성 되어 산정의 암벽이 남북으로 뚫려 관통되었단다. 동굴의 높이는 131m이고 너비는 57m의 커다란 구멍으로 1,999년 세계특기 비행에서 4대의 편대가 이 동굴을 통과하였다고 하여 천월천문(穿越天門)이라고 포스터가 소개하고 있다. 올라가는 계단의 기단시설 벽면에 ‘상천제(上天梯)’ 라는 제목으로 한시가 쓰여 있다. ‘제(梯)’ 자가 사닥다리 제자이니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계단’ 이란 뜻인가 보다.

오르는 계단이 999계단으로 한 계단만 오르면 천상이라는 의미란다. 계단 우측에는 표석에 ‘천문성경(天門聖境)’ 이라 새겨 놓았다.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이 조밀하여 오르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구룰 위험이 있다. 중간을 넘어 오르니 다리는 휘청이며 숨은 헐떡여 난간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발을 옮기면서 아래를 돌아보니 눈이 어지러워진다.

몇 번을 쉬면서 정상에 다다르니 마지막 계단 하나는 청동으로 용 계단을 설치하여 천상의 구역임을 상징하였다. 천문(天門)너머로는 아슬한 계곡위에 허로운 천계가 펼쳐져 있다. 이제 천문에 다다랐으니, 불국토는 정녕 그곳이시옵니까? 굴원이 초사(楚辭)에서 읊조린 ‘천문(天問)’을 되뇌어 보았다. ‘천존불가문(天尊不可問)하니, 고왈천문(故曰天問)’하노라. “하늘은 존귀하여 물을 수 없으니, 따라서 하늘이 물으신 대로 하리라.” 경건히 합장을 올렸다. 주지스님과 대, 여섯 명의 일행이 먼저 와 있다. 정상에서 만나니 더욱 환희롭다. 스님께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올라와 보니 작은 비행기는 동굴을 통과할 수 있겠구나 생각되게 크게 느껴진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길옆에 설치된 콘크리트 무대에서 현지인 복장을 한 까무잡한 총각 처녀가 피리 불며 북을 치면서 ‘노들강변’ 을 짧은 혓소리로 열창하고 있다. 오를 때도 그 노래더니 노상 그 노래다. 그냥 지나칠 수 없구나.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소년이 토비족 고유의 구성진 피리가락을 선사하니,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가 산골짝 가득히 울려 퍼진다.

버스를 타고 올라왔던 아찔한 그 길을 굽이굽이 내려오는데 운전기사는 잘도 내려온다. 다시 케이불카에 올라 승차했던 용정구시내로 돌아왔다. 마지막 코스는 황룡동굴이라 한다. 지하동굴의 아름다움은 한국에서도 많이 보아왔기에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한국에 비해 동굴의 규모가 크고, 한 지점에서는 모터보트를 타고 10여분을 유선 하는 것이 특이했을 뿐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장가계 공항에서 밤 9시 50분에 이륙하여 밤 11시 40분에야 상해에 도착하여 호텔에 들었다.

 

 

□. 2010. 10. 27.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08시50분 상해공항을 이륙하여 한국시간 11시 30분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하였다.

<끝>

 

이 게시물에 덧글을 남기세요
(다음 그림의 숫자를 입력하세요) 스팸방지 숫자 그림
  • 임선규 2011-01-20 오후 2:20:52 덧글삭제
    현장감이 살아있으면서도 문학적 성취까지 이룬 대단한 기행문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로 잘 보았습니다.
주지 : 성해 법상 (性海 法祥) / 고유번호 : 415-82-06783 / 22dhs@naver.com
59047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두륜산 대흥사(頭輪山 大興寺)
종무소 : 061) 534-5502~3 / 템플스테이 사무국 : 061)535-5775 / 팩스 : 061)535-5357
Copyright ⓒ Daeheungsa.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