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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와 대흥사

  • 임선규
  • 2009-09-04 오후 10:37:07
  • 14,375
  • 메일

가공산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1604년(선조 37년, 갑진년) 정월 눈이 많이 내린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서산대사는 제자들에게 가마를 시켜  타고 산내 암자와 법당을 두루 참배하고 둘러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제자들은 “날씨도 춥고 눈길도 위험한데 눈이 녹고 날씨가 풀리면 외출을 합시다.”고 아뢰었다. 서산대사는 “오늘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전 3달 전부터 열반을 준비하신 것과 같이 서산대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죽음을 준비하였다. 깊은 산사에 서산대사의 죽음을 알리는 열반종(涅槃鐘)이 울렸다. 제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서산대사의 화두(話頭)는 ‘마음’이었다. 서산은 평생동안 ‘마음’을 찾았고, 이젠 그에게 그가 찾았던 마음만 남았다.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나의 주인이요, 마음이 우주의 주체자요, 마음이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임을 확신하였다.


서산대사는 ‘한 물건(一物)(마음을 뜻함)’ 설법을 마치고 이어서 주장자를 곧게 세우고 ‘임종게(臨終偈)’를 읊었다.


천 생각 만 가지 헤아림이

붉을 화로에 한 점의 눈이로다.

진흙소가 물 위를 가나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구나.


千思萬思量(천사만사량)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泥牛水上行(이우수상행) 大地虛空裂(대지허공렬)
                     <청허당집 권1, 임종게>


서산대사는 자신의 영상(影像-초상화)를 가져오라 하여 그 뒷면에 단정하고도 힘있는 필법으로 영찬(影讚)을 썼다. 이 글씨가 <청허당집(묘향장판)>에 그의 영상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팔십 년 전에는 저것이 나이더니

팔십 년 후에는 내가 저것일세.


八十年前渠是我(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후아시거)


그리고 임종 때 자리에 있지 않은 수제자 사명스님과 처영스님에게 각각 유언을 써놓고 나중에 전하라고 분부하였다. 이 두 스님은 마치 부처님의 수제자로서 전법에 열심하다가 임종을 지키지 못한 마하가섭처럼 승병을 이끄는 승병장이라서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도(門徒)들에게 유언하였다.


“내가 죽거든 의발(衣鉢-스님의 옷과 밥그릇. 스승이 제자에게 심법(心法)을 전수할 때 흔히 증표로서 의발을 준다)을 반드시 전라도 해남에 두어라. 그곳은 두륜산이 있고 산 안에는 대둔사(대흥사)가 있어서 남쪽으로 원광산(遠廣山)을 바라보고, 북쪽으로 월출산(月出山)을 바라보고, 동쪽으로 천관산(天冠山)이 있고, 서쪽으로는 선은산(仙隱山)이 있으니 내가 옛날에 들려서 마음껏 즐기던 곳이다.


또한 해남은 국토의 끝으로 낙지(落地)요, 취약지구가 되어서 왕의 은혜와 교화가 미치지 못하여 백성들이 우매하다. 따라서 그들 중에서 나를 관람(觀覽)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들로 하여금 충성스런 마음을 일으키도록 할 것이다.“


유언을 마치고 서산대사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채 좌탈입망(坐脫立亡)하였다.

 

서산대사의 세상 나이(世壽)는 85세요, 출가하여 도를 닦은 햇수(法臘)는 65세였다.


서산대사가 입적한 뒤 장유가 비문을 쓴 청허대사비가 대흥사에 세워진 후 묘향산에 있던 대사의 유품이 속속 대흥사로 옮겨져 왔다.


1655년에 제자 명조정대(明照頂戴)가 서산대사 유언에 따라 옥발(玉鉢), 벽옥발(碧玉鉢) 3좌, 당혜(唐鞋) 2쌍, 금란가사(金襴袈裟)와 백초장상(白綃長衫), 벽옥발우(碧玉鉢盂) 삼합(三合), 칠보염주 삼조(三組), 차거유리배 및 교지(敎旨)를 두륜산 대흥사로 옮겨서 보관하고, 이후 서산문중의 본산으로 삼았다.


대흥사에서는 서산대사의 유촉(遺囑)을 받아 대사의 의발과 선조가 내린 대선사교지(大禪師敎旨)를 묘향산에서 옮겨와 보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사가 입적한 날에 제자들이 제사를 주관해 왔다. 그래서 대흥사에서도 서산대사의 사당을 건립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을 하게 된다.


정조는 대흥사 승려들이 올린 청원을 받아들여 "내용대로 시행하라"고 전교(傳敎)를 내려 표충사(表忠祠)가 지여졌다. 그 청원서 내용 속에 사명당 유정이 지은 서산대사 행장이 들어 있다. 유정이 지은 '서산대사의 행장 <유정찬기행장(惟政撰其行狀)>'내용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유정이 行狀을 지으니, 선사께서 입적하던 날에 제자에게 유촉하기를 "내가 시적(示寂)한 뒤에 의발을 호남도 해남현 두륜산 대둔사(대흥사)로 옮겨 기일날 제사를 지내라. 두륜은 벽우(僻隅-후미진 곳)에 있어 명산은 아니나 귀중하게 여기는 삼절(三絶)이 있다.


첫째는 기화이초(奇花異草)와 편시광경(片時光景)과 포백숙율(布帛菽栗)이 변하지 않고 오래 가며 멸망하지 않는다. 내가 두륜산을 보건대 이곳은 긍장(亘長)의 구역이다. 북에는 하늘을 떠받치는 월출산이 있고, 남에는 서로 얽혀서 이루어진 땅꽂이가 괸 달마산이 있다. 또 바다와 산이 서로 호위하므로 동부(洞府)가 深邃(심수)하여 만세(萬世) 동안 헐어 깨뜨릴 수 없는 땅이다.


둘째는 천리나 떨어진 곳이라 임금의 덕화(德化)가 완급(緩急)을 가릴 것 없이 미치지는 못하지만 하늘 아래 모든 곳이 왕토(王土)가 아닌 곳이 없다. 나라를 향한 충성을 일으키기 어려워서 큰 공적을 내세울만한 것은 없다. 성주(聖主)의 깊은 은혜를 관감(觀感)으로 빙거(憑據)한다면 후세에 어찌 표수풍성(表樹風聲)하여 우매한 풍속을 깨우칠 자가 없겠는가.


셋째는 처영(處英)과 모든 제자들이 모두 다 남쪽지방에 있다. 내가 처음 출가할 때 서로가 불법은 두류(頭流)에서 들었으니 이곳을 宗統으로 삼는 것이 도리어 귀중한 일이 아니겠는가?


너희들은 나의 유촉을 쫓아서 의발과 주상이 내린 대선사교지를 두륜산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입적한 날에는 제사를 제자들이 주관케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출처 : 신지견 <서산사상과 신자유주의>, 김형중<서산대사>)


대흥사 서산대사 부도(大興寺 西山大師 浮屠)

서산대사 부도는 대흥사의 부도중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부도전의 담장안 맨 뒷줄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허당(淸虛堂)'이라 새겨져 있다. 이 부도는 대사의 충정과 고덕을 알려주기 위해서 정성을 들여 기품있게 만들어져 있다. 팔각 원당형 구성에 상·중·하대석으로 구성한 기단 위에 탑신을 놓고, 정상부에 상륜(相輪)을 장식하였다. 부도의 높이는 2.6m로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인근에 있는 서산대사 탑비가 조선 인조 25년(1647)에 건립된 점으로 보아, 이 부도 역시 이때를 전후해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12월 26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석조물) 제57호로 지정되었다.


상륜부(相輪部) 받침에는 용의 머리를 새기었고 옥개석팔각(屋蓋石八角)의 귀꽃 위치에는 용 여섯마리, 쥐 한마리를 부각하였다. 그리고 지반위의 하대석 받침은 가늘고 긴 안상(眼象)과 복연(伏蓮)의 연화를 새기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조각수법은 장흥보림사(長興寶林寺)의 서부도(西浮屠)(보물 156호 고려시대)와 같은 계통의 작품이다.

대흥사 서산대사 부도는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갖춘 석조부도로, 각 부분에 표현된 다양한 조식은 다른 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일면을 지니고 있는 등 부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인터넷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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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공산 2009-09-05 오전 8:16:09 덧글삭제
    잘 보았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묘향산에서 입적하신 대사의 부도는 그곳에 있을 텐데 어떻게 대흥사에 있는가 이며, 임종 때에 유품을 생면부지의 대흥사에 보존토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 사연은 무엇인지, 대흥사에서 언제 어떻게 계신적이 있는지, 왜 유독 대흥사와 깊은 관련은 무엇이지 궁금합니다.
  • 성전 2016-03-15 오전 4:14:47 덧글삭제
    내 마음속에 등불이 되는 서사대사
    오늘도 묘향산 대흥사에 생명의 빛을 알게 됨을 감사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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